사회

제주 4.3 사건 75주년, 역사적 불의에 대한 대화와 화해의 중요성

지 PD 2023. 4. 3. 17:2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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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난 4월 3일은 제주 4.3 사건 75주년이었습니다. 이 사건은 1948년 화산 탐사대가 마을에 도착해 종을 울리면서 시작된 폭력과 파괴의 6년간으로, 1만 명 이상의 무고한 제주 주민들이 살해, 파괴, 방화, 약탈, 기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. 확인된 사망자 수는 1만 명 이상이지만, 3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살해되었다는 추정도 있으며, 최대 8만 명까지 증가하는 추산도 있습니다.

살해당한 대다수는 무고한 제주 주민들이며, 최소한 85~90% 이상의 폭력은 경찰과 대통령 이승만이 파견한 북서청년단 등 우익 조직에 의해 일어났습니다. 그러나 이 대학살에는 보이지 않는 손도 있었습니다. 그것은 미국입니다. 제주 4.3 사건의 뿌리는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가 제주도에서 결성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. 그러나 미 군정하의 경찰 대다수는 일제 식민 정치를 지지하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며, 제주도 역시 그랬습니다. 미 군정 탄생 이후 고용된 경찰 인원 대다수가 일제 식민 정치 지지자였기 때문입니다. 이러한 배경에서 1947년 3월 1일 집회에서 경찰과 시민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으며, 이승만 대통령의 단독정부 수립과 함께 제주도 주민들의 불만은 고조되었습니다. 이 때 좌파당 남로당은 정부에 대한 반란을 주도할 만큼 제주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.

이 사건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지만, 대신 6년간 이어진 대학살로 끝났습니다. 제주 4.3 사건은 역사적 불의에 대한 대화와 화해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사건입니다. 이번 75주년을 맞아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추모하고 모든 이들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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